November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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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인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며,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벽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발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흡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질기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ㅡ그리곤 북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음울>, 보들레르






October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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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DJ가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의롭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렵다.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기에 우리가 택하는 것은
  잘못한 사람들을 비판함으로서 의롭다 여김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어렵다.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앞서서 비판의 소리를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결국 누군가의 비판 소리에 "옳소!"하고 동조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찾게 된다.

영화 <도가니>를 보는 내내 이 DJ의 말이 귀 속을 맴돌았다.
의로워 질 수 없는 인간의 어두움에 절망하고,
잘못된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지만 본인의 삶에 매여 그럴 용기가 없음에 절망하고,
용기있는 누군가가 큰 소리로 떠들어줄 때 그제서야 비로소 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무관심함에 절망하고.

인간은 변하지 않으니까
또 끔찍한 일은 일어날테고...
누군가 이렇게 아주 시끄럽게 말해주지 않으면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겠지.

우리는 이렇게 여기에 묶여 있고,
어두운 그림자에 성난 개처럼 짖었다가도
이내 피곤해져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누워버리겠지.
삶에 치여 기진한 짐승들.
















October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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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들러 사람들의 짧은 글을 읽는다.
마치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을 눈으로 훑고 지나가듯 스-윽.

언제부터인가 페이스북이 만남의 장, 수다의 장이 되었다.
복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듣는다.
누구는 오늘 어딜 갔고, 무얼 먹었고, 무얼 봤고, 들었고...
그 무리에서 서성이며 빠져나오지 않는다. 

나는 성실한 구독자가 되었다.
꾸준히 내용을 습득한 유익이 있다면
종종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결혼식장에서의 어색한 만남들 가운데
이야기 소재를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채
삶의 언저리에 걸쳐진 것들만 보게되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연락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오히려 그들에 대한 작은 관심마저 식혀버린다.

관계는 더욱 짧고 얕고 가볍게 지나간다.
모두가 모두에게 가상의 인물이 된 것 같다.
나는 누구에게 실재하는 사람일까.











October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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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묘미는 낯설음에 있다.
사람들은 낯선 것에 불편함-두려움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일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다.

나의 7박 8일 여행은 낯설음의 관점에서는 실패였던 것 같다.
익숙한 곳을 몇 군데 찾아간 이유도 있지만
처음가는 곳도 새로울 것은 없었다.
국내여행이라 그랬던 걸까 내 마음이 너무 건조해져서 그런가.
하지만 낯설지 않아도 할말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자연.

특히 대매물도 방파제에 앉아서 봤던 일몰은 잊혀지지 않는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인데- 여행지에선 그것이 그렇게 특별하다니 웃기기도 하지만
서울에서는 공간을 온통 채워버리는 건물들과 희뿌연 하늘 탓에 해가 왔다 가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쉼을 얻으려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은 오히려 일상을 보게 한다.
매일 뜨고 지는 해와 그렇게 주어지는 나의 하루-
온통 삶을 메워버리는 '해야할 것'들 탓에 감사와 즐거움을 잃어버린 삶.
내게 주어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삶.
다시 돌아온 일상.
느릿느릿 그림을 그려보고,
살뜰히 집안을 돌보는-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하며. 









October 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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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 벼룩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홀린 우리 정신을 악의 베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악마,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술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 

구년묵이 똥갈보의 시달린 젖을 
입맞추고 빨아먹는 가련한 탕아처럼, 
우리는 지나는 길에 금제의 쾌락을 훔쳐 
묵은 오렌지처럼 한사코 쥐어짜는구나. 

우리 뇌수 속에 한 무리의 마귀 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하고, 으르렁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 뜻없이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여, - 내 형제여!


<독자에게> 전문, 보들레르








September 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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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지금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므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서로 싸우고 빼앗고 하여 양보란 있을 수 없을 것이요,
또 나면서부터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마련이므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할 줄만 알 뿐 신의나 성실성은 없을 것이다.
또 나면서부터 귀로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감각적 욕망이 있으니,
그대로 두면 무절제해져서 사회규범으로 지켜야 할 예의나 규범의 형식적 절차인 문리(文理)는 없어질 것이다.

<순자> 中 성악편, 순자





September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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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환자들 및 이웃으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펙 선생님, 세상엔 왜 악이 존재하는 겁니까?"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세상엔 왜 선이 존재하는 겁니까?"라고 물어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세상은 원래 선한 곳인데 어찌어찌하여 악으로 오염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과학이라는 영역에서는 악을 설명하기가 훨씬 더 쉽다.
사물이 파괴되어 가는 사실은 물리학의 자연 법칙에 의해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생이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보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거짓말을 하고 물건을 훔치고 커닝을 하는 아이들은 이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이 참으로 정직한 어른으로 자란 경우는 그보다 훨씬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다.
이렇게 볼 때 오히려 본래 악하던 세상이 어찌어찌하여 신비스럽게 선에 의해 나아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욱 타당성 있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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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라는 단어에 대한 일반적으로 용인된 정의가 없다는 사실은 그 문제의 신비가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내 생각에 우리에겐 이미 악의 본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으리라고 본다.
여기서 잠깐 여덟 살짜리 내 아들의 말을 인용해 보자. 아주 단순하고도 독특한 시각이다.
"아빠, '악(evil)'이라는 말은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거예요."
그렇다. 악은 삶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력을 역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살인과 관련이 있다.

악이 살인과 관련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꼭 육체의 살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악은 또한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에는 여러 가지 필수적인 속성들이 있다.
지각, 운동, 인식, 성장, 자율, 의지 따위가 그런 것이다.
실제 몸은 죽이지 않더라도 이런 속성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을 죽이거나 죽이고자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거짓의 사람들>, 스캇 펙





September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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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대한 미숙한 반응들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보고 싶다면, 
우리가 자신의 삶이나 직접적인 상황 속에서 악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문해 보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분노합니까? 
당신이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일을 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그 일에 어덯게 대처합니까? 또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타협점을 찾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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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티가 아주 냉혹하게 부각하는 악의 문제는 
단순히 모든 인간의 주장에 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갑니다. 
즉 인간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될 때 '나'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소용돌이치는 감정들, 기표들(signifiers), 충돌들의 덩어리만 남을 뿐입니다. 
'나'는 일정한 상태로 유지되는 흐름(flux)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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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은 우리가 모두 깊은 결함을 가진 존재임을 인식하면서도 
고전적인 원죄 교리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대신에 인간은 고정된 '정체성'이 없고, 그러므로 고정된 책임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터 안에서 여러분은 악을 피해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은 어디에서도 '책임질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톰 라이트

September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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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가장 가벼운 것이 곧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 





September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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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음악. 그대의 심연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가라앉히고 
그대는 우리에게 귀로 보기를 가르쳤으며 마음으로 듣기를 가르쳤다.

칼릴 지브란





September 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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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게 주신 것을 신은 언제든 다시 가져갈 수 있다.
난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파렐 윌리엄스





September 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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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이 언젠가 유용하게 쓰겠다고 생각하는 온갖 종류들의 흥미로운 허접쓰레기(고물)들을 모은다. 
그렇다면 왜 생각들은 모으지 않는가?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데이비드 베일즈&테드 올랜드





August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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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배우는 것은 의미가 없고, 배움 없는 생각은 위험하다.

공자





August 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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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성급함은 정공법의 느린 접근방식에 싫증을 낸다. 
그리고 단순히 성급하게 일을 해서 푹풍처럼 성채를 얻기를 소망한다. 
그들은 탁월함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노동이야말로 확고한 명성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고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한 다른 쉬운 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반복하여 말해줘야만 한다.
우리가 가장 뛰어난 화가들의 삶에 대해 읽을 때, 
모든 페이지는 그들이 어떤 시간도 낭비하면서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심지어 명성이 증가하는 것조차도 그들의 근면을 고양시킬 뿐이다.

조슈아 레이놀즈





August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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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은 이미 말했듯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직면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될 상태에 이르기 전에, 
미리 기꺼운 마음으로 고통스런 문제를 대면하는 것은 즐거운 일들을 나중으로 제쳐 놓는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앞으로 즐거운 일을 즐기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August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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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라 무식한 게 아니다.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타샤 튜터





August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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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원칙을 세워서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어느 시민의 고백>, 산도르 마라이






August 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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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쉽게 냉소주의자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진실이란 없으며 공정함이란 허구에 불과하고 관찰은 철저하게 편파적이며 
모든 이론은 정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절반은 옳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거나 올바른 길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또는 삶의 중요한 목적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리나 정의 혹은 목적을 발견할 수 없다거나 추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의미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맥 팔레인

August 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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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수선화를 피우기 위해 온 우주가 협력했으니 지구는 수선화 화분이다.

anonymous





July 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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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안도하는 것입니다. 
치유랑 늘 고통스러운 것이니까요.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편견과 기대라는 관념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누구도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따름입니다.

결국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성장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달라지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더군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골치만 아프게 될 테니까요.'

<깨어나십시오.>, 안소니 드 멜로





July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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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시간은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순간을 하염없이 품기 위해 흘러간다.
나는 아, 작은 선물, 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July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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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한사람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더욱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다른 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내 스스로 그런 한계를 만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헨리 나우웬





July 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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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은 성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July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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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꼭 써야 한다면 무조건 써라. 
재미없고, 골치 아프고,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그래도 써라. 
전혀 희망은 보이지 않고, 남들은 다 온다는 그 '영감'이라는 것이 오지 않아도 그래도 써라. 
기분이 좋든 나쁘든 책상에 가서 그 얼음같이 냉혹한 백지의 도전을 받아들여라.

J.B. 프리스틀리






July 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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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July 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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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주며 살았다...
힘을 빼면 어딘가로 날려가 버릴거 같아서.
힘을 빼면 몸이 가벼워지는대도.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June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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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작곡할 때 언제나 멋진 가발을 쓰고 정장을 했지. 
금, 은 분가루까지 가발에 뿌리고 말이야."
나는 약간 놀라서 오시마 상의 얼굴을 본다. "하이든이요?"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제대로 작곡을 할 수가 없었던 거야."
"어째서요?"
"어째서인지는 모르지. 그것은 하이든과 가발 사이의 문제야. 
남은 알 수 없어. 아마 설명도 할 수 없을 거야."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June 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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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가 먼저 있고, 그 도달한 사유에 맞춰 거꾸로 체험을 구성할 경우 작품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사유로부터 경험이 도출되는 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옷에 몸을 맞춘 것처럼 어색하다. 
몸에 옷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듯, 
경험에 사유가 뒤쫓아 가 그 경험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의 원리이다.

<다시 쓰는 문학에세이>, 김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