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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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주 그랬다. 철학적인 토론을 시작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을 제시하면서 그것들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다가 갑작스럽게 다시 중단해 버리곤 했다. 전에는 그가 나의 불충분한 대답이나 반박 때문에 짜증이 나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사색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이 결국엔 자신의 지식과 화술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까지 자신을 몰고 간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톨스토이의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옳은 이론과 궤변을 항상 제대로 분간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재능있는 어린애가 어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 투로 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그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경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능력으로 어떤 올바른 일도 시작한 바가 없었고, 그렇게 많은 재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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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헤르만헤세, <크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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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지전능한 자세로 삶과 인간성에 대한 규범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를 사로잡는 것을 묘사할 따름입니다. 크눌프 같은 인물들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해롭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유용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덜 해롭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로잡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 그의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 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헤르만헤세, 1954년 독자 에른스트 모르겐탈러에게 보낸 편지 중







September 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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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이를 껴안고, 
함께 데굴데굴 구르고, 
아무것도 아닌것에 꺄르르 웃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 모든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까 걱정될 만큼 좋다.

고마워. 내 딸. 
엄마 마음에 너의 모든 걸 잘 기억해둘게. 










July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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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였다.
매미가 울기 시작한게.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들인데도
잠깐 잠깐 해가 얼굴 내밀 때 열심히도 울어댄다.
이제야 진짜 여름인가 싶다.

징징대지 않고 멀쩡히 잘 놀고 있는 
아가를 
포대기로 내 몸에 묶고
며칠 내내 내린 비와 어두움에 우울해 할까바 
괜히 주절주절 떠들어 준다.
포대기에 아가 업고 부채들고
둥실둥실 스텝을 밟으며 동네를 돌아다니면
그야말로 동네 아줌마. 

한 손에 메로나를 들어주면 완벽한 장면.

이 아줌마가
그림 좀 그리려고 스케치를 시작했는데 진도가 안나간다.
장마 때문에 그리기 시작한 그림인데 장마가 끝나간다.
여름 안에는 그리겠지.
그래도 진행중인 그림이 펼쳐져 있으니
조금은 느려도 마음은 배부르다.

아. 여름아. 안녕.
















July 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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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월드 10주년 특별기획 한류대전환 3부 '한류의 미래' 그림책 작가 조선경>

선생님을 조명하는 내용의 방송-
멋지다. 
덕분에 방송 탄 내 책! 








July 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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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첫 창조적 활동, 아기 백일을 위한 왕관.
얼마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작업했는지...
작업하는 방에는 에어컨이 없어 여름에는 큰일이다.

백일을 준비하면서,
먹는것 이외에 돈을 쓰지 말자고 마음 먹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생각 없이 왕관을 구상하고 재료를 구입해서 왕관을 만들었다면
완전히 다른 것이 나왔겠지.

그런 의미에서 작업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 머리 속 이미지 조각들, 재료들-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림 그리던 일에 비하면 이건 그냥 놀이같은 거였지만
나름 깨달음이 있네 :)

아이를 돌보면서 작업할 에너지가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열심히 자료를 모아 눈으로 계속 이미지를 먹고, 내 것으로 소화하고,
또 생활 속에서 재료도 모아두고,
이야깃거리, 아이디어들도 잘 적어두고 해야지.
매일매일 이렇게 저축을 잘해두면 미래는 희망적이다.
현실에 실망할 일은 없다.


얍!

다만- 여름을 잘 이겨내자. 







April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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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이와 함께 찾아온 봄. 
종종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봄기운이 내 살갗에 아직 따뜻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꽃과 새싹으로 포근하다. 
봄이면 늘 남편과 창경궁, 정독도서관을 자주 산책하곤 했는데
올해는 산후조리로 봄바람을 마주하지 못하고 
밤낮 아기를 먹이느라 봄꽃은 멀기만 하다. 

2013 봄은 내 아가 유은이지-
유은이 꽃아 활짝 활짝 피렴! 
















March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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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출근하기 시작한 이후로 점심식사 시간에는 꼭 책을 보게 된다.
(밥먹을 때 딴 짓하는 게 좋은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안그래도 식사량이 적은데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순식간에 식사가 끝나고,
그렇게 싱겁게 식사가 끝나면 배가 허전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시간이 그냥 심심하다.

책을 읽다보면 머릿속에서는 작가의 말투로 같이 대화를 하고 있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거의 연관성 없는 이야기들- 그래 이건 차분한 대화라기 보단 수다에 가깝다.
그러고 나면 앗, 나도 작가처럼 어서 글로 적어놔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너무 흥분했었나.
흠, 책을 덮기 전에 메모를 해야지.

그나저나 이렇게 혼자 하는 점심도 이제 얼마 안남았네-
오늘의 메뉴는 각종 토마토리조또 레시피를 정독한 뒤 내 멋대로 만든 토마토죽밥.










March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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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




















내 첫 아이와 첫 그림책이 슬슬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가 나오기 전에 그림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조금은 절망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일은 아주 먼 훗날로 미뤄버렸을지도.
그게 마땅한거라 스스로를 설득했겠지. 

아직 출판물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니지만(출판까지는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샘플책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 과정, 인쇄 과정을 보고 있으니 
다시금 열정이 살아난다. 
다음은 무엇을 그릴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이 날 신나게 한다. 

모든 엄마들이 아이가 나오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을 할 때에
나는 과연 시간을 쪼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일한 고민을 하면서 그 상황 속에서도 책을 만들어 냈던 작가들을 보면서 
나도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작가로서의 삶. 
지금 나의 일이자 동시에 여전히 꿈인 것. 
그것을 다시 마음속에 불러 일으킬 에너지가 생긴 것에 감사하다. 
나는 할 수 있고, 아이들은 내게 새로운 영감이 될 것이라 믿고 나아가야지. 





January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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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동산















이사를 했다. 
베란다에서 작은 동산이 보이는 집으로. 
콘도에 놀러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전경이 아름답고, 동네는 조용하다. 

처음부터 아주 좋은 것?을 갖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땐, 처음이라 의미있었고, 나름 만족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전에 비해 조금 더 넓어지고, 따뜻하고, 조용하고,

좋아진 이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지. 

곧 세상에 나올 우리 아가와 우리 가족에게 선물같은 보금자리.
몸이 좀 무겁지만 부지런히! 집을 포근포근하게 단장해서
우리 축복이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