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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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환자들 및 이웃으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펙 선생님, 세상엔 왜 악이 존재하는 겁니까?"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세상엔 왜 선이 존재하는 겁니까?"라고 물어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세상은 원래 선한 곳인데 어찌어찌하여 악으로 오염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과학이라는 영역에서는 악을 설명하기가 훨씬 더 쉽다.
사물이 파괴되어 가는 사실은 물리학의 자연 법칙에 의해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생이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보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거짓말을 하고 물건을 훔치고 커닝을 하는 아이들은 이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이 참으로 정직한 어른으로 자란 경우는 그보다 훨씬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으르다.
이렇게 볼 때 오히려 본래 악하던 세상이 어찌어찌하여 신비스럽게 선에 의해 나아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욱 타당성 있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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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라는 단어에 대한 일반적으로 용인된 정의가 없다는 사실은 그 문제의 신비가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내 생각에 우리에겐 이미 악의 본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으리라고 본다.
여기서 잠깐 여덟 살짜리 내 아들의 말을 인용해 보자. 아주 단순하고도 독특한 시각이다.
"아빠, '악(evil)'이라는 말은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거예요."
그렇다. 악은 삶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력을 역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살인과 관련이 있다.

악이 살인과 관련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꼭 육체의 살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악은 또한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에는 여러 가지 필수적인 속성들이 있다.
지각, 운동, 인식, 성장, 자율, 의지 따위가 그런 것이다.
실제 몸은 죽이지 않더라도 이런 속성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을 죽이거나 죽이고자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거짓의 사람들>, 스캇 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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