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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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DJ가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의롭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렵다.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기에 우리가 택하는 것은
  잘못한 사람들을 비판함으로서 의롭다 여김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어렵다.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앞서서 비판의 소리를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결국 누군가의 비판 소리에 "옳소!"하고 동조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찾게 된다.

영화 <도가니>를 보는 내내 이 DJ의 말이 귀 속을 맴돌았다.
의로워 질 수 없는 인간의 어두움에 절망하고,
잘못된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지만 본인의 삶에 매여 그럴 용기가 없음에 절망하고,
용기있는 누군가가 큰 소리로 떠들어줄 때 그제서야 비로소 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무관심함에 절망하고.

인간은 변하지 않으니까
또 끔찍한 일은 일어날테고...
누군가 이렇게 아주 시끄럽게 말해주지 않으면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겠지.

우리는 이렇게 여기에 묶여 있고,
어두운 그림자에 성난 개처럼 짖었다가도
이내 피곤해져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누워버리겠지.
삶에 치여 기진한 짐승들.
















October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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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들러 사람들의 짧은 글을 읽는다.
마치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을 눈으로 훑고 지나가듯 스-윽.

언제부터인가 페이스북이 만남의 장, 수다의 장이 되었다.
복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듣는다.
누구는 오늘 어딜 갔고, 무얼 먹었고, 무얼 봤고, 들었고...
그 무리에서 서성이며 빠져나오지 않는다. 

나는 성실한 구독자가 되었다.
꾸준히 내용을 습득한 유익이 있다면
종종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결혼식장에서의 어색한 만남들 가운데
이야기 소재를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채
삶의 언저리에 걸쳐진 것들만 보게되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연락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오히려 그들에 대한 작은 관심마저 식혀버린다.

관계는 더욱 짧고 얕고 가볍게 지나간다.
모두가 모두에게 가상의 인물이 된 것 같다.
나는 누구에게 실재하는 사람일까.











October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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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묘미는 낯설음에 있다.
사람들은 낯선 것에 불편함-두려움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일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다.

나의 7박 8일 여행은 낯설음의 관점에서는 실패였던 것 같다.
익숙한 곳을 몇 군데 찾아간 이유도 있지만
처음가는 곳도 새로울 것은 없었다.
국내여행이라 그랬던 걸까 내 마음이 너무 건조해져서 그런가.
하지만 낯설지 않아도 할말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자연.

특히 대매물도 방파제에 앉아서 봤던 일몰은 잊혀지지 않는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인데- 여행지에선 그것이 그렇게 특별하다니 웃기기도 하지만
서울에서는 공간을 온통 채워버리는 건물들과 희뿌연 하늘 탓에 해가 왔다 가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쉼을 얻으려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은 오히려 일상을 보게 한다.
매일 뜨고 지는 해와 그렇게 주어지는 나의 하루-
온통 삶을 메워버리는 '해야할 것'들 탓에 감사와 즐거움을 잃어버린 삶.
내게 주어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삶.
다시 돌아온 일상.
느릿느릿 그림을 그려보고,
살뜰히 집안을 돌보는-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하며. 









October 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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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 벼룩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홀린 우리 정신을 악의 베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악마,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술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 

구년묵이 똥갈보의 시달린 젖을 
입맞추고 빨아먹는 가련한 탕아처럼, 
우리는 지나는 길에 금제의 쾌락을 훔쳐 
묵은 오렌지처럼 한사코 쥐어짜는구나. 

우리 뇌수 속에 한 무리의 마귀 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하고, 으르렁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 뜻없이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여, - 내 형제여!


<독자에게> 전문, 보들레르